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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영 댓글 0건 조회 135회 작성일 26-02-18 12:2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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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청와대 나온 뒤 세상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았던 공덕귀 여사 ▲ 1960년 10월 1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신정부수립 경축식에 참석한 윤보선 대통령 내외와 장면 국무총리 내외. 왼쪽에서 두번째가 공덕귀 여사.ⓒ 연합뉴스프란체스카-공덕귀-육영수-홍기-이순자-김옥숙 등으로 이어지는 역대 대통령 부인 중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름이 있다. 유일하게 실권 없는 의원내각제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공덕귀다. 윤보선 대통령이 아닌 장면 총리가 실권자였기 때문에, 윤보선의 부인인 그를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로 볼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그러나 그는 역사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남편이 대통령을 그만둔 뒤에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여성노동운동이었다. 또 민주화 투쟁도 벌였다. 현대 한국의 핵심 과제에 두루 참여했던 것이다. 그는 역대 대통령 부인 중에서 이례적인 인물이다.공덕귀는 처음에는 개신교 전도사였다. 1911년 5월 19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다닌 그는 10대 때부터 인도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이것이 전도사 직업으로 이어졌다.그가 열일곱 살 때인 1928년에 인도 마드라스에서 세계기독교학생연맹(WSCF) 총회가 열렸다. 이때 인도 기독교인들은 이 대회의 새벽예배를 이끈 수피아여학교 교감 김필례에게 감동을 받았다. 김명구 서울YMCA 월남시민문화연구소장이 쓴 <공덕귀>에 따르면, 인도인들은 "영국 사람의 선교는 받고 싶지 않지만, 한국 사람이 오면 선교를 받겠다"라며 한국인 선교사 파송을 희망했다.인도인들은 영국 제국주의의 침략과 함께 전개된 영국 교회의 선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들이 한국인을 원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공덕귀가 꿈을 꾸게 됐던 것이다.당시 한국인들은 영국 식민지 인도에 동병상련을 품었다. 그런 한국인들을 상대로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는 1929년 4월 2일 자 <동아일보>에 실릴 '조선에 부탁'을 선사했다. '동방의 등불'로 알려진 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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